[피플] 6월 '이달의 기능한국인' 하광운 대표

김인서 기자 | 기사입력 2019/07/25 [07:00]

[피플] 6월 '이달의 기능한국인' 하광운 대표

김인서 기자 | 입력 : 2019/07/25 [07:00]

 2919년 6월 '이달의 기능한국인' 수상자 하광운 대표는 45년간 금형설계 분야에 종사해 온 기능인이다. 학연, 지연, 혈연의 도움 없이 오직 실력으로 승부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독자적인 기술연구에 매진했다. 그 결과 효율성을 높이면서도 친환경적인 기술들을 지속적으로 개발해냈고, 기업을 코스닥에 상장 시키는 등 기술인과 경영인으로서 성과를 이루었다.

▲ 6월 이달의 기능한국인 하광운 대표     ©휴먼뉴스

 

■ 소년가장의 시련, 성장제가 되다


  강원도 고성에서 2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하광운 대표는 양복점을 하던 아버지의 일손을 거들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읍내의 조그만 가게였지만 재봉 일과 잡일 등을 도우며 아버지에게 보탬이 되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1학년 재학 중 아버지를 여읜다. 16살의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된 하 대표는 슬퍼할 겨를도 없이 양복점 운영을 이어갔다. 갑작스러운 일이었지만 어린 시절 승부 근성이 뛰어났던 그는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무작정 서울의 소공동을 찾아가 재단을 배우며 양복점 사장으로써의 자질을 갖춰나갔다.
  소년 가장으로서 생계를 이어나가야 했기 때문에 학업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주독야경하며 학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덕분에 1년에 50~60일을 결석했지만 중위권 성적을 유지하며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시련이었지만 오히려 간절함과 목표가 있다면, 그리고 죽을 각오로 노력한다면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 양복점 사장, 기술에 도전하다


  하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기계에 대한 호기심이 남달랐다. 집안에 있는 기계는 기어이 자기 손으로 분해를 해봐야 직성이 풀렸다. 특히 양복점 덕분에 재봉틀은 장난감 다루듯 다룰 수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재봉틀이 고장 나면 수리공 대신 하 대표를 찾아올 정도였다.
  뛰어난 손재주를 가졌음에도 형편상 상고를 진학했고, 양복점을 운영해야 했기 때문에 제대로 손재주를 발휘할 기회가 많이 없었다. 그러다 성인이 되어 평생의 진로를 고민해야 할 무렵 작은아버지로부터 기술을 배울 것을 권유받았다. 기계를 잘 다뤘던 특성을 살려 경기과학기술대학교 정밀기계과로 진학하였다.
  처음 해보는 기술 공부가 쉽지는 않았다. 단어 하나하나가 생소했다. 학교 수업을 마치면 시간을 쪼개 KS규격집과 기계공학 관련 서적을 소설책 읽듯이 읽어나갔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포기하지 않고 수 십 번 반복해서 읽었다. 당시 3시간이 넘게 잠을 자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스스로를 혹독하게 몰아붙였다. 그 결과 상고 출신의 양복점 사장은 상위권의 성적으로 정밀기계과를 졸업하게 된다.

 

■ 능력중심사회의 시작은 나부터


  우수한 성적 덕분에 대한전선 금형설계팀에 학교의 추천을 받아 입사하게 된다. 당시 대한전선은 알아주는 기업이었고 소위 ‘SKY’라 불리는 명문 대학교를 졸업한 사원들이 많았다. 또한 학연, 지연, 혈연을 중시하는 문화가 만연하였다.
  전문대학 출신인 하 대표에게는 많은 차별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기술력이 학연, 지연, 혈연의 벽을 뛰어넘게 해줄 수단이라 굳게 믿었다. 하 대표는 기술 연구와 개발을 위해 같은 설계를 두 번 하지 않았다. 편한 설계 방법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설계 법을 접목하려 노력했다. 속도와 효율보다 조금 느리더라도 자신이 발전할 수 있는 길을 택한 것이다.
  덕분에 설계 기술은 눈에 띄게 향상돼 갔고, 신 모델 개발 시 핵심 부서에 발탁되어 실력을 발휘하는 등 능력 하나로 신임과 인정을 받게 됐다. 부조리에 좌절하거나 맞서 싸우기보다 기술로 최고가 되어 스스로 인정받겠다는 집념과 승부근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 정직과 성실로 이룬 세계 최초 타이틀


  이후 더 큰 기업의 기술과 문화를 접하기 위해 LG전자로 이직한다. 이곳에서 약 100페이지 분량의 설계 교본을 만들어 신입사원들을 교육하기도 하고, 제품 설계자로서 제품의 특장점을 토대로 한 마케팅 포인트를 영업사원들에게 알려줘 매출을 증대시키는 등 설계 실력과 경험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때 대기업의 경영문화를 접하며 기업가로서의 소양을 키울 수 있었다.
  하지만 대기업에서도 학벌주의와 혈연 및 지연 관계에 의한 갈등이 지속됐다. 이에 능력 위주의 기업을 만들고자 1985년 현대전주금형을 창업한다. 가리봉동의 10평 남짓한 작업장에서 직원 3명과 함께 기술을 개발했고 국내 최초로 금형전주코어를 개발하기에 이른다.


  이를 바탕으로 사업은 승승장구하였고 계속해서 1)ER-MOLD (친환경 무도장 Weldless금형), 세계최초 2)무인쇄 도광판(Printless LGP)과 이를 활용한 LCD-BLU(Back-Light Unit)등 뛰어난 고유기술을 만들게 되었다.
  무인쇄 도광판과 LCD-BLU의 양산으로 기업규모가 커지자 2001년에는 레이젠㈜를 코스닥시장에 상장(‘16년 경영권 매각)하기도 하였고, 현재는 2010년 레이젠㈜ 금형사업부에서 분할 설립된 레이몰드㈜를 통해 금형, 사출사업을 하며 직원수 50여 명에 연매출 86억 원의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정직’과 ‘성실’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왔기에 가능한 결과다.

 

■ 세계 최고의 꿈을 설계해 나가다


  기술 개발과 성공으로 사업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왔지만 인력과 기술이 유출되는 일들이 하 대표를 힘들게 했다. 그럴수록 하 대표는 직원들의 능력 개발과 직장생활에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였다.
  NCS국가직무표준을 도입하고 일학습병행제에 참여한 것도 그 일환이다. 진심을 다해 직원들의 역량을 키우고, 체계를 잡아가다 보면 자연스레 회사에 대한 애정도 높아질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하광운 대표는 직원들과 함께 앞으로도 계속해서 기술 개발에 매진할 계획이다.
  젊은 시절부터 다짐했던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겸비하기 위해서다. 이를 통해 한국 금형산업 발전에 공헌하길 희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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