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7월 '이달의 기능한국인' 조덕형 대표

김인서 기자 | 기사입력 2019/07/25 [07:00]

[피플] 7월 '이달의 기능한국인' 조덕형 대표

김인서 기자 | 입력 : 2019/07/25 [07:00]

 

 2019년 7월 '이달의 기능한국인' 수상자 조덕형 대표는 39년간 기계가공 분야에 종사한 기능인이다. 금속절삭가공 및 특수 접합, 표면처리 등의 분야에서 개인적인 기술 습득과 더불어 연구개발 시설과 인력 확충에 끊임없이 투자하며 회사를 성장시켜왔다. 그 결과 해외 장비에 의존하고 있던 반도체 장비 부품의 국산화를 이루었으며 2017년 한 해 동안 160만 달러의 수출을 이루는 등 기술력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 7월 이달의 기능한국인 조덕형 대표     ©휴먼뉴스

 

■ 주어진 운명이었기에 열심히 배운 기술


  전라남도 장성군의 시골마을에서 3남 5녀 중 7번째로 태어난 조덕형 대표는 정미소를 운영하시던 부모님 덕분에 비교적 유복한 유년을 보냈다. 하지만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위암 투병으로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어렵게 중학교를 마친 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공업고등학교 진학이었다. 빨리 취업을 해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정미소에서 기계를 직접 수리하던 아버지를 보며 자랐기에 기계가 낯설지 않아 전남기계공업고등학교 기계과에 입학하였다.
  손재주가 뛰어나거나, 기계를 직접 다뤄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적응이 쉽지는 않았다. 실습 시간엔 종종 불량품을 만들어 꾸중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한 번 했던 실수는 절대 다시 반복하지 않았다. 자신의 실수를 다른 탓으로 돌리지 않고,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꼼꼼하게 원인을 따져보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라 생각해 한눈팔지 않고 묵묵히 최선을 다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고된 학업도 참고 견뎌냈다. 이런 집념 덕분에 남들보다 빨리 고등학교 2학년 때 정밀기계가공기능사 자격증 취득에 성공하고 장학금까지 받을 수 있었다. 작은 성공을 맛보며 기술인으로서의 기초를 확실히 다진 것이다.

 

■ 배우는 재미, 성장하는 재미에 빠지다


  기능사 자격 덕분에 취업도 쉬웠다. 경상남도 창원에 위치한 한국화약㈜에 입사해 병역 특례까지 받을 수 있었다. 학창시절 최선을 다한 보상을 받은 셈이다.
  조 대표는 어린 시절 학업에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재미를 붙인 분야에는 승부욕을 발휘했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 때는 어떤 종목이든 에이스 노릇을 했을 정도다. 그 승부욕이 기술로도 이어졌다. 기계 제작을 진행하면서 기계를 다루는 일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첫 직장이니만큼 실수도 많이 했지만 학창시절 때처럼 실수를 극복하며 실력을 쌓아갔다. 점차 늘어가는 기술에 재미가 느껴졌다.
  기술 연마에 재미를 느끼다 보니, 이왕 시작한 기술인의 인생을 최고로 만들고 싶어졌다. 더 큰 배움을 위해 창원기능대학 기계공학과에 진학해 주경야독하는 삶을 살았다. 덕분에 기계가공기능장 자격을 취득했고, 독일 기능장들로부터 선진기술을 습득할 수도 있었다.

 

■ 기술로, 집념으로 버텨낸 위기


  직장에서 15년간 산업용 기계를 만들다 보니 그 시대에 활황인 산업을 꽤 뚫을 수  있었다. 그럴수록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고 마음을 다잡았다.
  더 큰 도전을 위해 1995년 산업 전용기계 제작을 위한 금속 절삭만 전문으로 하는 금속가공전용기계 업체로 이직을 했다. 공장장으로 근무하며 생산 전반에 대해 경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얼마 뒤 회사가 문을 닫아 2년 만에 실직자 신세가 되었다.
  경제 불황으로 재취업이 어려운 상태라, 자신과 함께 끝까지 회사를 지키던 동료들과 함께 1997년 지금의 ㈜동원파츠를 설립한다. 하지만 회사를 설립하자 곧 IMF 사태가 터졌다. 달러 빚을 내 구입한 장비들의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고객사가 부도가 나면서 막대한 빚을 지게 됨은 물론 일거리도 떨어져 버렸다.
  누가 봐도 포기해야 맞는 상황. 하지만 조 대표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저 예전처럼 묵묵히, 그리고 열심히 하면 될 거라 생각했다. 아내와 알뜰살뜰 돈을 모아 장만했던 아파트를 팔아 사업 자금을 마련했다. 영업을 위해 먹을 것, 입을 것, 자는 시간을 아껴가며 발로 뛰어다녔다. 돈이 안 되더라도, 남들이 기피하는 어려운 일이라도 닥치는 대로 맡아서 하였다.
  그렇게 3년을 버티다 보니 사업이 안정화되고, 힘든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오히려 이것저것 계산해보고 고민했다면 진작에 포기했겠지만, 기술을 믿고 버텼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 대한민국 일등을 넘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다


  어려운 시절, 어떤 일이든 맡아서 했던 경험은 큰 자산이 됐다. 조 대표도 기계 가공뿐만 아니라 측정, 설계, 접합 등 다양한 기술을 익혔다.
  덕분에 ㈜동원파츠는 현재 국내에서 유일하게 재료 수급과 기계 가공, 특수 접합을 포함한 각종 접합과 후처리 등을 직접 관리하는 원스톱 시스템(일괄가공생산 체재)을 구축하고 있다.
  해외 기업에 의존하고 있던 반도체 장비 부품 국산화에도 성공했다. 반도체 장비 업체의 양대 산맥인 램리서치 社가 ㈜동원파츠의 기술력에 관심을 갖고 찾아와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 필요한 부품인 샤워헤드를 공동 개발하게 된 것이다.
  2017년에만 160만 달러의 수출을 기록했고, 램리서치 社로부터 20억 원의 투자금을 2년간 무상으로 제공받았다. 향후 현금 상환이 아닌 제품 상환을 조건으로 받은 투자다. ㈜동원파츠의 기술력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 투자는 성공의 지름길


  조 대표는 회사가 성장할 때 마다 필요한 연구개발과 시설투자 및 인력 확충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그것이 회사와 구성원 모두를 성장시키는 비법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 제2공장 증축과 기계가공 설비시설에만 230억 원을 투자하였다.
  덕분에 원스톱 시스템과 스마트 팩토리를 구축할 수 있었고, 매출을 올려 투자금액을 회수하는 것이 가능했다. 가장 확실하고 안정적인 투자가 바로 기술에 대한 투자였던 셈이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기술의 발전을 위해 기술인을 양성할 수 있는 인프라와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고 믿기에 인재 육성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중도 퇴사율을 낮추고 내부 교육체계를 바로 잡고자 2016년부터 ‘일학습병행제’에 참여 중이다.
  2018년에는 고용노동부의 ‘일학습병행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학습기업 부문 대상으로 선정되는 쾌거도 이뤘다. 일학습병행제 참여 이전부터 11년간 직원교육 스터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자체적인 문화를 만들고 있었던 공로를 인정받았다.
  기계를 만지는 일이 재밌고, 직원들이 성장하는 걸 지켜보는 것이 재미있어서 은퇴를 될 수 있는 한 미루고 싶다는 조 대표. 언젠가 독일의 마이스터 제도, 일본의 도제식 교육 문화를 뛰어넘는 대한민국만의 기술인 양성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데 조그마한 기여를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