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고암,"새김아트는 이랑과 고랑이라는 공생의 조화가 근본정신"

한글과 문양을 합일하여 평면이 아닌 부조형식의 한지로 된 현대작업 진행 중

장재진 편집인 | 기사입력 2019/12/01 [17:20]

[인터뷰] 정고암,"새김아트는 이랑과 고랑이라는 공생의 조화가 근본정신"

한글과 문양을 합일하여 평면이 아닌 부조형식의 한지로 된 현대작업 진행 중

장재진 편집인 | 입력 : 2019/12/01 [17:20]

 

 [휴먼뉴스=장재진 편집인] 현대미술의 아이콘으로 통하는 앤디 워홀은 상업 삽화가로 출발했으나 팝아트 선구자로 변신, 대중미술과 순수미술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피카소는 보이는 그대로 실재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가지고 사물에 대한 해부를 시작하고 이를 그림에 담아내면서 큐비즘을 탄생시켰다. 이렇듯 예술가들은 늘 도전과 혁신을 통해 자신의 혼을 담은 독특한 예술세계를 일구어 낸다.


'새김아트' 창시자 정고암(72)아티스트도 늘 새로운 시각으로 혁신하는 예술가이다. 그는 사방 3cm 방촌(方寸)이라는 전각의 한계를 획기적으로 확대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창안하면서 항상 새로운 기법에 도전해 왔다.


그는 2006년 한국전각예술원을 설립, 운영하면서 자신의 예술세계 '새김아트'를 확산시켜 나가는 작업을 지금도 진행 중이다. 지난 11월 26일 오후 서울 삼청동 삼청공원 입구에 자리 잡은 한국전각예술원 겸 새김아트갤러리에서 그를 만났다.

▲ 작품앞에서 포즈를 취한 정고암 아티스트. 그는 자신감이 넘쳤다    © 휴먼뉴스

 

고암은 ‘전각예술’을 ‘새김아트’라고 불러 달라고 했다.

 

"아티스트란 혼자 가는 겁니다. 철저하게 그 외로움과 고독함을 견딜 수 있어야 아티스트입니다. 거기에서 철학이 생겨나고 문학적 소양도 생기고 그 내공이 쌓이는 거지. 그러면 시선의 높이가 달라집니다. 하드웨어적 시선에서 소프트웨어적 시선으로 갈 수 있는 그 시선의 높이는 전혀 다르죠. 너무나 다르기에 그 시선 높이의 느낌을 잡을 수는 없는 것이지만, 그것을 해내는 게 아티스트이죠."

그의 예술철학이 물씬 묻어났다.

 

"잘 쓰고, 잘 새기고, 잘 그리고 하는 것들은 전부 기능성이에요. 테크닉이죠. 물감을 뭘 발랐냐, 어떤 재료를 쓰느냐 하면서, 매일 그것만 쫓아 다니면 평생 기능적인 것만 배우다가 진정한 자신의 철학적 내공을 십원 어치도 못 찾고 아티스트가 아닌, 그냥 기술자로 남는 거지요. 예술과 기술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대부분 기술을 예술로 보는 경향이 많고, 예술에 대해 기술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잘못 보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교육이라는 것이 그런 점에서 필요하죠”

진정한 예술정신 없이 기능에만 치중하여 예술 흉내를 내는 이들에게 하는 고암의 일갈이다.

 

-새김아트를 창안한 계기와 그 예술정신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정체성이죠. 나의 정신과 색깔을 다짐하고자 했던 거고 찾아내려 했던 거죠. 그리고 원래 새김아트를 만들기 전에 전각을 처음에 공부할 시기에 내가 이것을 하게 되면 내가 타고난 역량을 다 담아낼 수 있는 그릇, 즉 도구가 될 수 있겠다. 그래서 이걸 키우면 조형미술이 될수 있고, 설치 미술이 될 수 있고, 큰 조각 즉 건축물도 될 수 있고 3D까지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많겠다는 생각을 했죠. 결국에는 다 해냈죠. 심지어 영상까지 해서 애니메이션까지 내가 맨 먼저 했죠. 멀티죠”

▲ 작품명 '하늘땅 사람 물불바람'. 새김아트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과 함께 훈민정음의 모든 내용을 사면의 한자한자 칼끝으로 새기고 금호로 마무리하여 완성한 작품으로 한글의 디자인적 가치를 기리고 있다.     ©휴먼뉴스

 

고암은 1969년에 월남 파병을 자원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다. 맹호부대로 파병되기 전에는 군악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병이었다.

 

“노래만 부르는 거죠. 아무 생명력이 없는 거에요. 꾀꼬리지, 창의성이 없는 거죠. 내 자존감이 생길 수 있겠냐 그래서 나는 안 하겠다, 내가 자존감을 가질 수 있고, 나 스스로 창의적인 것을 찾아낼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했죠. 그래서 학교를 가야지만 아무래도 팔자를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공부를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니까 월남을 가서 돈 벌어서 대학을 가려고 했어요. 가서 죽으면 어쩔 수 없고, 살아 오면 새 인생을 살 수 있겠다 싶어서 갔다 왔죠. 제대 후 군에서 번 돈을 들고 집에 돌아와 보니 빚쟁이들이 여럿 와 있어서 그 돈을 다 줬죠. 다시 빈털터리가 됐어요. 그 뒤로 스웨터 짜는 의류공장에서 한 1년간 일을 했는데 수입은 괜찮았으나 재미가 전혀 없었어요. 당시 내 인생에 대해서 철학적 고민을 되게 많이 했던 시기였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뛰쳐 나온 거죠. 새로 일을 시작했는데 도장 파는 일이었죠. 그 때만 해도 전각이라는 것을 모를 때였죠”

고암이 27세 때 전각과 인연을 맺은 이야기다.

 

그 후 46년의 세월이 흘렀다.
도장을 새기는 견습생이 그 긴 세월동안 전각예술을 섭렵하고 ‘새김아트’를 창시 하기까지 힘들었던 부단한 각고의 노력과 도전정신이 읽힌다.

 

▲ 작품 '사랑'을 들고 이랑과 고랑을 설명하는 정고암 아티스트.     © 휴먼뉴스


“전각은 한자의 각 서체 중에서 가장 조형성이 깊은 전서체를 구사하여 인(도장)이라고 하는 한정된 공간에 사람의 정성을 심는 동양 순수예술이다가 전각의 정의에요. 그런데 이것은 마음에 안드는 부분이 있어요. 한정된 공간이라고 했거든요? 한정된 공간이라는 것은 3cm이내, 이것을 방촌의 세계라고 해요. 왜 여기만 새기냐고”
왜 방촌 안에만 작업해야 하느냐는 의문이 그를 혁신하게 하고 도전하게 만들었다.

 

본래 전각은 중국 진나라 때에 쓰던 여덟 가지의 서체중 전자(篆字)를 나무, 돌, 금옥 따위에 인장을 새기는 일을 말했다. 서예를 알아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새김아트라는 말은 내가 1996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용했어요. 단순한 전각이 아니라는 뜻이죠”

그 때부터 고암에게서 전각예술은 '새김아트'라는 새로운 예술 장르로 태어난다.


"새김아트에는 물리적인 새김과 추상적인 새김, 모두 다 들어 있어요. 커뮤니케이션도 새김에 포함되죠. 서로 간직하고 받는 것도 다 새김입니다. 에로틱도 다 새김이에요. 음과 양의 조화도 포함되죠. 태극문양에 빨간 부분 볼록은 이랑이라고 하고, 파란 부분은 고랑이라고 하는 데 이러한 이랑과 고랑이 새김아트의 근본적인 나의 예술이자 창작의 기본입니다”

 

- 작업 방식과 재료가 궁금한데요.

 

“방촌의 세계를 넘어서려고 하면 다른 판을 만들어야 하니까 판을 키운거죠. 그래서 방촌이 아니라 굉장히 넓은 몇 미터짜리도 만들고, 예전에는 파주 헤이리에서 석고로도 만들고 해서 판이 넓어져 버린 거죠. 왜 석고에다 하느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돌가루를 모아 놓은 게 석고 아니냐, 현대적인 돌이다. 그리고 붓 대신 칼은 어디에든 써도 되고 칼이 들어가는 모든 재료는 다 쓴다라고 했죠. 한계가 없어요. 크기도 색상도 한계가 없어요. 내가 하는 작업에서 가장 많이 쓰는 재료는 건축 재료예요. 그리고 한지도 있고, 그래도 돌이 다루기 제일 쉬워요. 새기기 좋은 부드러운 우리나라 해남석을 많이 써요. 납석이라고도 말하죠. 작업 크기는 다양해요. 1m  5m 20m까지 있어요"
 
-현재까지 작업한 작품 수는 얼마나 됩니까?

 

“한 1만점 있고요. 판화작업까지 보태면 5만점 정도 될 겁니다. 판화도 기본만 해 놓고 안 찍어낸거 많아요. 여기(전각예술원)에 있는 작품은 빙산의 일각이고 김포에 120평 정도 크기의 작업실이 있는데 그곳에 작품을 보관하죠. 벽화같은 큰 작업할 때는 그 곳에 가서 하죠. 외부공간도 있고...”

상당한 작업량이다. 웬만한 작가도 이 만큼 작업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새로운 작품들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벽에 걸린 여러 작품을 가리키며) 저렇게 컬러 작업들 있죠? 전각은 보통 빨간색만 있는 줄 아는데 제가 다양한 색으로 찍어내기 시작했어요. 저런 그림 같은 것, 저기 사람 날아가는 거 있잖아요. 저건 애니메이션에 나온 건대 다 내가 작업했어요. 컬러 찍어내는 기법이 굉장히 다른데 현대식 탁본기법, 정고함의 탁본기법, 새김탁본기법이라고 내가 발명한 기법이죠. 탁본은 요철 부분에 색을 묻혀야 하잖아요. 종이를 덮고 위에서 두들겨야 하는데 나는 반대로 역발상적으로 종이가 투명하면 바로 뒤에서 찍어버려서 올리면 된다. 투명하니까. 비치잖아요. 그것을 문지르면 그대로 올라온다라고 하는 생각을 바꾼거죠. 일본과 대만에서도 생각 못했던 탁본기법인데 이것은 사건이에요. 그런데 한 번도 언론에서 이것을 안 실어줘”

 

- 그렇게 작업을 하면 찍어내는 작품이 똑 같지는 않겠는데요?

 

”그렇죠. 엄격하게 보면 사실은 판화지만, 제가 문질러서 하는 것은 온리 원(only one)이에요. 사진으로 비교를 하면 다 다른 거에요. 사람마다 다르고 문지르는 스타일도 다르기 때문에 온리 원이죠. 전각 작업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거나 새로운 개발을 한 거는 내가 다 한거에요. 아무도 그렇게 한 사람은 없어요. 크기를 크게 한다던지, 색깔을 바꾸어 버렸다던가 현대적 도구를 활용했다던가 이런 것들은 전부 나의 작업입니다. 과거에 개발한 컬러 탁본기법을 활용한 판화는 당연하고, 이것을 다시 넘어서 벌써 오래 전부터 한글과 문양을 합일하여 평면이 아닌 부조형식의 한지로 된 현대작업을 하고 있어요"

 

▲ 삼청공원 인근 도로 벽면에 설치된 정고암의 새김아트 작품 '삼청의 꿈'. ©휴먼뉴스

 

고암은 '새김아트'에 대해 다시 한번 강조했다.


“보여지는 세계와 가려진 세계가 어울러져서 현상세계를 이룹니다. 이것이 새김아트의 철학이에요. 새김아트의 아주 골조적인 철학이죠. 유와 무가 있고 허와 실이 있어요. 글 쓰는 자가 유무를 가져다 쓰든, 허실을 가져다 쓰든, 색공을 가져다 쓰든, 이랑과 고랑 음양의 조화라는 거죠. 새로운 세계를 열려고 하면 새로운 철학이 있어야 하는거고  정고함의 세계가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내가 새롭게 시도하는 탁본기법이나 뭐 여러 가지 기법 등은 전부 나 정고함으로부터 새로 시작된 것이죠"

 

-이랑과 고랑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신다면?

 

"펭귄이 여기 서 있어요. 바깥은 춥잖아. 바깥은 춥고 가운데는 따뜻하니까 펭귄이 안쪽에 서 있다가 점점 움직여서 밖으로 나오고 밖에 나와 있던 애는 돌아서 안으로 들어가고, 그래서 그들이 종족을 번식하고 사는 거에요. 쌩쌩 추워서 얼어 죽겠는데 계속 거기 서 있으면 불공평하잖아요. 그런데 인간만이 안 그런다는 거에요. 인간은 바보스럽게 가장자리에 있는 애는 계속 가장자리에 있고, 가운데 있는 애들은 영원히 계속 가운데 있고, 그게 뭐냐면 우주의 음양이 돌아가는 태극 문양과 똑같아요. 이랑과 고랑의 원리를 펭귄도 아는데 우리는 이랑과 고랑을 몰라”

 

고암의 '이랑과 고랑론'은 음양의 조화 즉, 함께 배려하며 살아가자는 공생의 원리를 담아내고 있었다. 마음에도 새기고 머리에도 새기는 것, 고암의 예술정신인 것이다.

 

고암은 전각예술계에 일침을 놓는다.


“서예가만이 새겨야 문자 예술이니까 서예가만이 해야 진짜 전각이라고 착각을 하는 거에요. 아니라는 거지. 그럼 서예가가 보는 전각의 세계와 전각가가 보는 세계와 화가가 보는 세계와 다 다른데 누가 옳으냐 하면 아무도 옳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면 내가 보기에는 전각가가 보는 전각이 가장 옳다는 거지요. 거기에는 글씨와 그림과 조각이 합일된 종합예술이 전각이라고 하니, 전각가가 보는 게 가장 맞죠. 그리고 문헌에 따르면 옛날에도 전각은 서화 글씨와 그림보다 한 수 위라고 했어요. 그런데 (서예가들은) 그런 이야기는 절대 안 하지. 뭐라고 하느냐 전각을 배우려면 글씨 다 끝내고, 그림 다 끝내고, 진짜 일가를 이룬 다음에 하는 거라고 말해요. 그러면 어떤 사람이 전각을 해요 안 하지”
전각예술이 온전히 독자적인 예술로 위상을 못 찾고 있는 현실을 따지는 이야기다.


“지금도 서예가들이 전각을 (별도 단체로) 독립을 안 시켜줘요. 중국에서 안하니까. 중국은 어릴 때부터 같이 해버렸으니까. 그래서 우리 같은 사람들이 서예쪽에 들어가면 별로 안 좋아해요. 일부로 막는거야. 모든 학계가 다 그래. 그러니까 전각 속에는 전각가가 없고 역사 쪽에는 역사가가 없다고 하는 거에요. 앞으로는 전각예술이라는 어휘보다는 가능하면 새김아트, 새김예술이라고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전각예술이라는 단어가 싫어서 내가 새김아트라고 만든거니까요. 전각예술은 중국인들이 만든건데, 내가 아무리 잘한들 중국이 자기들 것이라 할 텐데...”

 

 - 70대 연세에도 목소리가 힘이 있으신데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십니까?


“올해 만으로 72세인데 건강관리를 너무 안해서 최근에 조금 아팠어요. 그래도 많이 회복 되었죠. 산 공기 좋은 데로 왔으니까 내가 운동을 해야지요. 아플 때는 피곤해서 의욕이 떨어지더라구요. 올 봄만 해도 그랬어요. 내가 워낙 실험작업을 많이 하는데 플라스틱 깎아서 붙이는 작업을 많이 했거든요. 디지털적 느낌을 주기 위해 컴퓨터 뒷 판을 돌아다니면서 몇 가마니 샀어요. 컴퓨터 뒤판 또는 전자오락기 뒤판 그런 것을 자를 때 연기가 발생하는데 정말 안 좋아요. 마스크를 꼭 써야한다고 누가 이야기해 주는 것도 아니고 무작정 작업을 했는데 갑자기 안 좋아져서 고생했죠”

 

-앞으로의 계획과 후학 교육은 어떻게 구상하고 계신지?
 
"앞으로 유튜브도 할거구요. 유튜브도 하면서 과거의 가르치는 그런 교육보다는 조금 좀 더 창의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철학을 구현할 수 있는 작품 교육들을 해야 해요. 내가 이렇게 해왔고 내가 해왔던 것을 이대로 전달만 하면 돼요. 사실은 앞으로의 세계는 잘 쓰고 잘 새기고 이런 기능적인 것은 AI가 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물론 AI가 잘 쓰고 잘 새기고 하더라도, 자기의 철학적 내공을 쌓는 것은 AI가 못 훔쳐 가지요. 알파고도 못 훔쳐 가요. 그래서 자기의 고유성 즉, 캐릭터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형태의 미가 아니라 정신적 세계를 구축을 하는 것이, 무엇을 하던 간에 자기 삶을 창조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미래방향은 좋다고 봅니다. 왜냐면 가장 지금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만약에 AI가 이것을 한다고 하더라도 침범을 못 해요. 정신적 철학 문제는 AI가 해결할 수 없죠. 자기의 소프트웨어는 자기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거죠. 나는 여러 의미에서 성공도 했고 내년에 미국의 마나그룹이라고 하는 회사에서 오라고 해서 거기에 갈려고 합니다. 아티스트 레지던시니까 한 6개월에서 1년 정도 될 것 같아요“

 

- 계약은 돼 있나요?

 

“예 계약이 되어 있습니다. 원래 내가 꿈꾸던 거니까 세계적인 작가들과 콜라보레이션도 하고 다른 작가들과 콜라보레이션하는거 되게 좋아해요. 내 개인작업도 하고 거기에 갤러리도 있고 뭐 다 있어요”

 

인터뷰를 마칠 무렵 약속이나 한 듯 새김아트갤러리에는 방문객들이 계속 이어졌고 갤러리는 분주해졌다.

  

▲ 새김아트 갤러리에 걸려있는 작품들.     © 휴먼뉴스

 

▲ 새김아트 갤러리에 걸려있는 컬러탁본 기법을 적용한 작품.     © 휴먼뉴스

 

▲ 새김아트 갤러리에 걸려있는 작품들.     © 휴먼뉴스

 

고암 주요 약력

 

개인전 35회 및 단체전 112회 1989~2017년

중국상하이 한국문화원 특별초대전 2017년

벨기에 브뤼셀 주 유럽 연합 한국문화원 특별초대전 2016년 5월~6월

이스탄불 아트페어 대표작가(AnB 갤러리 chwjd) 2013~2014년  

청와대 신년인사회 무대작품 2015년

개천절 한글날 경축식 무대, 실외 작품 디자인 2014년  

MBC 방송연예대상 예술 원작자 2010년

제 5회 서울 드라마 어워즈 예술감독 2010년

베이징 올림픽 타이틀 애니메이션 MBC 2008년

초중고 국정 교과서 작품 수록 2002년~현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예부문 심사위원장 2016년

행정자치부 장관표창 2015년

새김아트 창시 2006년

극동대학교 환경디자인 교수 역임  

현) 한국전각예술원 원장

현) 한국미술협회 자문위원

 

주요 소장처 및 소장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한양대학교박물관, 힐러리 클린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탕웨이,벤틀리 CEO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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